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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묘지

소 산 2008. 6. 9. 14:01

 

 
현충일 UN묘지를 찾아서...

 


현충일 아침 국제신문에 카나다인 한국참전용사의 기사를 읽고 눈시울을 적시며 이국만리에서 우방을 위하여 용감하게 목숨바친 참전용사들에게 고마움을 새삼 느끼며 UN묘지를 찾았다.


 


묘역 최상단에 각국의 국기가 계양되어 있고 국가별로 전사자의 비석이 배열되어 있고 제단에는 각계인사와 단체의 헌화가 새워져 있었다. 국화 한송이 헌화하고 묵념을 올리고 앙드레 .아델라드.레짐발드씨의 비석을 찾아보았으나 상단에는 없어서 하단에서 찾아보려하였으나 관리인이 잔듸보호를 위하여 출입을 못하게하여 찾지를 못하고 돌아왔다.


20세의 젊은나이에 남의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잃은 슬픔은 그의 가족들과 함께 우리 국민모두가  슬픔을 나누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레짐발드씨는 약혼한상태에서 아들을 낳고 16일만에 참전을 하였다고 하며, 그당시 카나다에서는 미혼모가 애기를 기른다는것은 허용이되지 않아 양부모에 입양을 시키게되었으며 그의 아들 레오. 드메이(55세)씨는 정신과 의사인 양부모밑에서 유복하게 자라 공무원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2년전 입양국에서 친모가 찾고 있다는 연락을 받고 어머니를 만나러 헐이라는 도시에서 이복형과 생맥주를 마시려 하는데 70대의 노신사가 들어오는데 그의 모자에 KOREAN WAR VENTERANS(한국참전용사)란 글을 보고 참전용사임을 확인하고 혹시나 하고 아버지의 이름을데니 놀랍게도 그는 아버지의 부대를 지휘하던 지휘관이었으며 중공군의 포탄이 빗발치는 그날 아버지의 시신을 50km 후방으로 이송한 은인이었다.


그후 정부 기관에서 아버지의 전사 기록을 찾아내고 지난해 4월 처음으로 한국을찾아 아버지 묘역에 장미꽃을 바쳤다고 한다.


드메이씨는 평소 아시아국가에서 영어교편생활을 꿈꾸어왔던차 직장을 조기퇴직하고  지난해 11월 입국하여 유엔묘지에서 10분 거리의 모영어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노신사는 지금도 한국참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데 지금은 한국인조차 동족상잔의 슬픈역사를 잊혀가고 있어 안타깝다고 한다. 제55회 현충일을 맞아 우리는 이역만리에서 우리나라를 지켜준 유엔전사자들에게 뜨거운 감사를 보내야겠으며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고귀한 정신을 잊지말고 애국하는 국민이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