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9정맥 종주를 마치고...
실학자 여암 신경준 선생의 산경표를 이우형 선생께서 어느 고서점에서 발견하여 1990년대 초 전국을 방문하며 우리 고유의 산경표를 홍보하시고 일제에 의하여 왜곡된 우리의 산줄기를 바로잡기 위하여 대학학생 연맹의 백두대간 답사가 이루워지고 이어서 단독종주자와 안내산악회의 백두대간 답사가 활기를 뛰며 미로의 길이 이제는 도로가 되다싶이 넓어지고 백두대간의 인식도 많이 높아졌다고 하겠다.
그러나 아직도 백두대간을 맥주집 간판으로 알고 정맥에 관해서는 등산을 즐기는 동호인들도 잘모르는 사람이 많다. 정맥 마루금을 찾아가면서 그지방의 주민을 접할때마다 당신들이 사는곳이 정맥 마루금이라고 설명하면 풍수지리적으로 인식하며 정맥의 개념을 아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다.
그동안 많은 산악인들이 산경표를 찾아 험난한 길을 뚫어가며 때로는 실날같은 마루금을 찾느라고 또는 애매한 지역에서는 정확한 마루금을 찾기위하여 고난의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은 크게 힘들이지 않고 진행할수 있었으며 마루금을 찾아 고생하신 선답자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땅 줄기를 바로잡기 위하여 많은 산악인들이 백두대간과 정맥 답사를 하며 우리의 땅줄기를 찾아가기 어언 15년이 지났건만 이제 겨우 백두대간 보전법이 발효되었으나 지역 이기주의 때문에 시행에 논란이 되고 있으며 일제에 의하여 왜곡된 산 이름, 일본 천황을 뜻하는 皇자와 임금왕 旺자로된 산이름도 수정하지 못한 실정이다.
자손만대에 아름답고 깨끗한 금수강산을 물려주어야 하는데 우리의 국토는 개발이란 명목으로 백두대간의 줄기가 수없이 짤리고 정맥의 마루금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 너무나 가슴 아픈일이다. 자연보호를 외치는 정부가 앞서서 자연을 파괴하고 혜손하는 주범이라 생각하며 후세를 위하여 올바른 시책을 바란다.
민족 이념으로 막혀진 38선이 헐리고 북녘의 대간과 정맥도 하루속히 밟을수 있기를 바라며 끊어진 마루금을 턴널을 만들어서라도 빨리 이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우리의 역사가 숨쉬고 있고 민족문화의 상징인 우리땅 줄기의 소중함을 바로알고 보존하는데 정부는 최선을 다해주기를 바란다.
1996년 백두대간 단독종주를 나서며 우리 국토의 상징인 백두대간 줄기를 내 발로 직접 밟아 보고싶은 충동에서 지리산 웅석봉에서 시작하여 지리산 휴게소부터 덕유산을 지나 대덕산을 넘기까지 무릎의 심한 통증을 느끼며, 조령산을 넘고는 동해 잠수함 공비의 출현으로 입산이 금지되어 한때 중단하였다가 다시 시작하면서 청옥산을 지나 이기령에서 정확한 마루금을 찾아 헤메다가 무릎에 통증이 심하여 어둡기전에 백복령까지 갈수가 없어 원방재에서 삼화동으로 탈출하다가 산골의 와딴집 ㅠ주민의 신고로 공비로 오인되어 안전무장 경찰에 연행되기도하며 단독종주를 마치고 1997년 산악회 회원과 함께 두 번째 백두대간 종주에 이어서 2000년 4월 낙동정맥을 백두대간 삼수령 피재에서 출발하여 백병산을 넘고 석계재에서 통고산 구간은 길찾느라 어둠속에서 헤매기도 많이 하였다.
통고산, 백암산 구간을 지나면서는 한주뒤 종주하는 부산의 모산악회의 길찾기에 도움을 주느라고 많은 표시기를 달고 하느라고 무더위에 탈진 하기도 하였으며 주왕산군을 지나면서는 수북이 쌓인 ㅡ낙엽길을 밟으며 모두가 함께 즐거움을 느꼈고 운주산을 넘을때는 때아닌 폭설에 추위에 떨어야 했고 천성산 제1봉(원효산)을 지나 공군부대를 우측으로 진행하여야 하는데 좌측으로 우회 하면서 지뢰매설 경고판에 가슴을 조이며 통과하기도 하였다.
2001년 9월 낙남정맥을 종주하며 두곳의 골프장을 통과하고 남해고속도로와 수많은 과수원과 도로를 건너야 했고 유수교를 지나면서는 진양호의 물을 사천만으로 흘러 보내기 위하여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가하천을 보며 목이 메이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가슴아픔을 겪어야 했으며 지리산군에 들면서는 산죽지대를 헤쳐나가느라 얼굴이 할키면서도 9정맥 종주의 꿈은 깊어갔다.
2003년 백두대간 3차(왕복)종주를 산악회와 진부령에서 천왕봉까지 끝내고 2003년 4월 금남 호남 정맥을 백두대간 영취산에서 단독으로 출발하여 전북의 진산들인 장안산, 팔공산, 마이산을 지나 주줄산에서 마감을 하고 다시 금남정맥 진안의 진산 연석산, 운장산을 지나 장군봉 그리고 기암절경의 대둔산과 계룡산을 지나며 우리 산하의 비경을 다시한번 즐기며 백제의 고도 부여의 부소산을 거쳐 조령대에서 금남정맥을 마감하였다.
그해 10월 산악회와 호남정맥의 대장정을 섬진강 외망에서 출발하여 험난한 숲속을 헤쳐나가기도 하며 때로는 아름다운 우리 국토의 자랑스러움도 느끼며 광양 백운산, 도솔봉을 지나고 정맥은 남서진하며 철쭉으로 유명한 보성의 일림산, 제암산을 지나고 정맥은 북진하며 광주의 진산인 무등산, 단풍으로 유명한 전북의 내장산을 지나고 여름 무더위 속에서도 추령재에서 옥정호 초당골까지 가시덩쿨을 뚫으며 고난과 고통을 극복하고 주줄산에서 끝을 맺는다.
호남정맥 종주중에 2, 4주는 금북정맥을 종주하며 거리가 멀어서 비용을 절감하려고 2, 3일간씩 연속산행을 하니 체력의 무리를 느끼면서 몸살을 앓기도하며 일시 중단하다가 2004년 6월 한북정맥을 시작하여 최전방 대성산 수피령에서 경기도의 명산들인 복주산, 광덕산, 백운산, 국망봉, 운악산을 거쳐 서울의 도봉산을 지나 장명산에 이르러 폐기물 처리장으로 변한 현장을 보고 가슴아파하며 곡룡천에서 습슬한 마감을하고 다시 남은 금북정맥으로 발길을 옮긴다.
지난번 가야산, 수덕산을 넘고 중단했든 스므고개에서 백월산, 오봉산을 넘어 이름없는 4~500m대의 야산들을 수없이 넘고 칠현산지나 칠장산에서 금북정맥을 마치고, 한남정맥을 2004년 12월 7일 김포의 보구곶리를 출발하여 9차에 걸쳐 문수산, 수암봉, 수리산, 광교산, 구봉산을지나 1개월만에 칠장산에 도착하고, 2005년 1월10일 한남금북 정맥을 시작하여 금년 3월 2일 백두대간의 속리산 천왕봉에서 남한의 9정맥을 산경표데로는 마쳤으나 금남정맥과 한북정맥의 일부가 이론이 제기되고 있어 남은 미제를 둔샘이다.
9정맥의 마지막 코스를 산악회 회원과 함께 다시 걷고 싶어 예정일을 3월 6일로 정했으나 경남, 부산의 폭설로 인하여 부득이 코스를 경주 남산으로 변경하여 9정맥완주 축하산행을 마쳤다. 그동안의 축적된 피로가 풀리면 남은 미제를 풀고 몇 달동안 좀 소원했던 산악회 산행도 함께할 예정이다.
9정맥의 일부구간은 아직도 여름철에는 수풀이 우거져 진행에 어려운곳이 있고 한남정맥과 금북, 한남 금북정맥의 일부가 마루금이 시가지와 도로로 변하여 정맥 탐사에 회의를 느끼기도 하지만 정맥을 찾아가는 우리가 있기에 백두대간과 정맥을 보호하는데 일말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며 위안을 삼는다.
그동안 백두대간 3회, 9정맥 종주를 하면서 크게 어려웠든 것은 백두대간 단독종주시 가은재(불란치재) 이화령 구간에서 무리를하여 심한 갈증에 맥주를 마신게 위경련이 일어나 문경 여관에서 일요일이라 병원에도 못가고 생명의 위험을 느꼈고, 호남정맥 종주시 추월산에서도 배탈이 일어나 밀재에서 탈출한적이 있으나 종주를 중단할 정도로 상처나 부상을 입은적이 없어 산신령님께 감사함을 느꼈다.
경주 남산에서 백설의 향연을 즐기며 9정맥 종주 기념산행에 만족하고 일찍 부산에 도착하여 주연을 갖이며 산악회서 수여하는 기념패를 받고 축배를 나누며 그간의 노고에 위안을 삼으며 그동안 단독산행을 염려하고 성원해준 산악회 회원과 전국의 많은 선후배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리고 후답자에게 길을 열어준 선답자의 노고에 다시한번 깊은 감사를 드리며 마지막으로 집을 비울때마다 불안을 감내하며 인내하여준 아내에게 도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낀다.
대한산악연맹 부산연맹 백두산 산악회 명예회장 곽연기.